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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4 지리산 산행
2012. 2. 14. 12:03
 2012. 2. 4 ~ 5 양일 간에 걸쳐 지리산을 다녀왔다. 

 지리산에 가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의 동기는 지난해 여름 한라산 등반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아마 눈 덮인 겨울 깊은 산세를 자랑하는 지리산이 무작정 마음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의 즉흥적으로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겨울에는 그럼 지리산 한번 가자' 라는 말이 씨가 되어, 등산에 대한 호감 그리고 운동에 대한 관심을 자양분으로 아마 드디어 겨울에 지리산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애초의 나는 등산에 대한 일말의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개그맨 이경규나 영화배우 최민식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산은 그저 바라만 보고, 가벼운 산책로를 걸으며 산이 주는 싱싱한 기운과 싱그러운 내음들을 맡으면 됐지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온 몸이 찝찝해질 정도로 땀을 흘려가며 오를 이유도 없었거니와, 몸이 무거웠던 탓에 조금만 올라도 숨이 가빠오르는 것도 산을 직접 오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충분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한다고 했던가. 나에게도 모든 것에 있어서 조금씩의 변화가 찾아왔는데, 예를 들어 음악 취향에 있어 포크나 트로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 시절에서, 현재는 포크나 트로트의 깊은 맛을 느낀다던지 아니면 달달한 카라멜 마키아또를 즐겨마시던 모습에서 시럽도 넣지 않은 진한 아메리카노만을 고집한다던지의 변화가 생겼다. 이런 변화의 모습은 운동이나 땀흘려 하는 것을 기피하던 것에서도 나타났는데, 바로 등산도 그 중 하나였다.

 왜, 갑자기 등산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내가 산을 탄 일이라곤 군 시절 파주 월롱산을 오르던 것이 주로 였고 대학원 다닐 적에 교수님과 엠티를 가서 올랐던 낮은 산 아니면 예전 연애했을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몰랐어도 갔었던 유명산 뿐이었다. 이런 산들은 산을 좋아해서 갔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반 강제의 힘으로 갔었던 것인데, 변화의 바람은 전혀 다른 곳에서 불어왔다.

 작년부터 시작한 야구를 통해 땀 흘리고 운동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헬스를 하면서 내 몸을 소중히 생각하게 됨에 따라 다른 운동을 할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다 생각하게 된 것이 등산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조금 엉뚱하고 슬픈 일이지만, 주말에 할 일이 없어서 고심 끝에 산이나 가서 몸이라도 건강해지자 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근교의 광교산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높은 산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 걸음 따라 지리산까지 갔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 한라산에 올라서서, 운해를 뒤로 하고 >

 지리산은 대학교 동기 친구들 셋과 함께 총 넷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이 친구들은 학부 때 만나서 졸업 작품도 같은 팀으로 하고 10년이 넘게 만나고 있는 좋은 친구들인데, 그 중에 하나가 이번에 결혼하게 되어 마지막 싱글 여행 같은 기념도 되었다. 금요일에 친구 한 녀석과 만나서 마트에서 이것 저것 장을 보고, 다른 두 녀석도 밤 늦게 모두 우리 집에 모여서 같이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지리산까지는 수원에서 약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고, 전라도 초입부터는 해가 쨍쨍한게 아마 산행을 위한 길한 조짐이 아니었나 싶었다. 사실, 겨울 산행을 준비하면서 다들 두꺼운 내피와 기능성 옷들 그리고 아이젠과 스틱까지 단단히 준비를 했는데 지리산 근처에 도착하니 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고 막상 차에서 내리니 입춘이라 그러한지 봄 기운이 완연한 따뜻한 날이었기에 더러 실망하기도 했다.

 우리는 중산리에서 시작해서 칼바위를 지나, 사람들이 주로 오르는 법계사 코스가 아닌 바로 장터목 대피소 코스로, 등산로에서 보면 좌측 코스를 올랐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코스는 워낙 험하고 법계사 코스에 비해 길기까지 하여 주로 하산에 이용하고 입산으로는 많이 사용을 하지 않는 코스였다. 생각해보면 산을 오르면서 같이 오르는 일행은 전혀 보질 못했고, 꾸준히 내려오는 등산객들만 봤던 것 같다.

 나는 내심 근교 광교산도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자주 찾았고, 헬스나 야구로 운동도 꾸준히 했고,  한라산도 올라가봤기 때문에 지리산 산행에는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지리산은 한라산보다 40m나 낮은 산 아닌가! 하지만, 산행을 시작한지 30분만에 벌써 지쳐갔다. 여름에 한라산을 오를 적에는 짐이라곤 땀을 닦을 수건 한장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개인당 물 2L와 갖은 취식물들 그리고 옷가지들로 배낭이 꽉 차서 족히 5kg은 되는 짐을 가지고 오르고 있었던 것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지리산 길들은 꽤 험한데 한라산을 부드럽고 다정한 여자에 비유하자면 지리산은 마치 우락 부락한 근육을 키운 남자와 같았다. 길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돌 무더기가 그 크기도 제각각인 것들을 올랐고,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큰 줄을 사용해서 오르기도 했다. 약 1시간 정도 산행을 했을까. 우리는 금새 힘이 들어서 쉬어 가기로 했는데 마침 옆에 계곡이 있었다. 힘이 들어서 밑에만 보고 갔던 이유도 있지만, 바위들이 워낙 크기가 제각각이라 밑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주변을 느끼면서 산행할 여유가 없었기에 쉬기로 한 까닭에 만난 계곡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 얼어 붙은 계곡이 끝내줘요 >

 계곡에서 휴식한 이후 부터는 약간씩 바위가 줄어들었는데, 이내 조금 지나지 않아 눈 덮인 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지리산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애써 구입한 아이젠이 필요 없다며 툴툴 댔었는데 짐이 무겁다고 아이젠을 차에 놓고 올랐으면 정말이지 큰일날 뻔 했다. 산 중턱 이후부터는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랐다. 중턱 이전까지 제일 기운이 팔팔하던 영후도 나와 비슷하게 힘들어하던 의순이도 묵묵히 잘 오르던 수상이도, 우리 모두 산 중턱 이후부터는 급속도로 지쳐서 기어이는 10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할 정도가 되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눈이 덮인 산을 오르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겨우내 한 번도 녹지 않았던 눈들이 50cm가 넘도록 쌓여 있었고 등산로에도 20cm가 넘게 눈이 다져진 채로 였다. 그 상태에 경사는 약 60도 이상을 유지한 채 계속 꾸준히 올라야 했으니, 힘이 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마침 남은 거리에 따라 시간 계산을 해보니 서두르지 않아도 여유있게 갈 수 있을거라 생각이 되어,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 힘들어도 웃으며 >

 쉬면서 천천히 오르니 드디어 우리가 묵을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1박 2일과 같은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부터 산장에서 자는 것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순간이었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서 본 하늘은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다. 시간이 마침 해가 지고 있을 시점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힘든 길을 오르고 올라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기 때문인지, 아름다운 광경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 장터목 대피소의 일몰 >
 
 대피소에 막상 도착하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로맨틱할 줄 알았던 숙소는 군 내무실보다 비좁았으며, 티비 1박 2일에서 보여줬던 넉넉하고 여유있는 취사장은 고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 10분 동안 라면과 많은 군것질을 해치우던 비좁은 매점과도 다를 바 없었다. 생각과 다른 현실의 괴리도 잠시 배고픔과 피곤함이 우리를 재촉하여 시끌벅적하고 좁은 매점과도 같은 취사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준비한 음식을 조리했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라면과 햇반 그리고 삼겹살 김치 두루치기[각주:1]였다. 라면과 햇반은 내가 준비하였고, 삼겹살 김치 두루치기는 의순과 수상이 요리하였다. 큰 코펠 냄비 4/7 정도의 물을 넣고 끓이다가, 물이 끓으면 준비한 라면과 스프를 넣고, 라면이 풀어질 때 쯤에 햇반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끓어오를 때에 준비한 참치 캔을 넣고 계속 지글지글 끓이면 산장식 특제 라면밥이 완성이 됐다. 

< 보기엔 이래도 맛이 끝내줘요! >


 우리는 모두 배가 엄청 고팠기 때문에 라면밥이 완성되자 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코펠 냄비가 생각보다 작은 까닭에 라면을 두번에 나눠서 끓였는데 첫 번째 것은 조금의 시간이라도 아깝다는 듯이 아무도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모든 집중을 다해 재빠르게 먹었고, 두 번째 라면밥이 완성된 이후부터는 슬슬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삼겹살 김치 두루치기도 두 번째 라면밥과 비슷하게 제조하여 준비된 팩 소주와 함께 고된 첫 날 산행의 여독을 풀었다.

 저녁과 간단한 음주를 마무리하고, 눈으로 뒷 정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눈을 붙였다. 딱히 산장에서는 할 일도 많지 않거니와,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또 배가 부르고 몸이 몹시 피곤한 탓에 이른 시간인 8시가 되기도 전부터 잠을 청하였다. 우리는 산장에서 자는 것이 처음이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귀마개였다. 누가 시끄러운 사람의 대명사로 아줌마라 하였는가? 누가 아이들이 제일 시끄럽다 말하는가? 적어도 아이들은 말 귀를 알아듣지만, 다 큰 아저씨들은 술도 마셨겠다, 아주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통에 영 잠을 이루질 못하였다.

< 아 괴롭다 >

 양을 세었던가. 숫자를 세었던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시끄러운 괴로움에 몸서리치다 겨우 잠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잠깐 눈을 붙였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새벽 4시 반이 조금 지나고 있었다. 원래는 5시 넘어서 일어나서 아침 밥을 먹고 천왕봉 정상에 가려 했으나, 산장 안내 방송을 들어보니 산장에서 정상까지 1시간 10분 정도 소요가 된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일행의 걸음으로는 그럼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조금 일찍 서두르기로 하고 친구들을 깨워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은 전투 식량과 작은 사이즈의 컵라면으로 준비했다. 전투 식량이 아니더라도 시중에는 간단히 전투 식량과 같은 형태로 물을 넣어 비벼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팔았는데, 우리는 옛 군 생활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일부러 군납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전투 식량으로 준비했다. 사실, 군 시절에 먹었던 전투 식량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참 맛있게 먹었다. 훈련 하면서 식사 시간이 되면 큰 플라스틱 물통에서 물을 받아서 전투 식량과 왕뚜껑 하나를 먹고 나면 어떤 고된 훈련을 받더라도 배고프지는 않았던 기억이 났다. 

< 잘 보면 보인다. 전투식량 >

 배를 든든히 채우고 숙소에 오니 슬슬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덮었던 담요를 반납하고 짐을 챙기고, 쓰레기를 한데 모아 다시 배낭에 넣고, 물을 나눠서 작은 병에 담아서 싣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단단히 채우고 준비한 손전등을 앞세우고 천왕봉을 향해 걸음을 시작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대청봉을 지나쳐야 하는데, 대피소를 나서자마자 대청봉으로 향하는 언덕이 끝도 없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걸음을 떼고 정확히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가뿐 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한치 앞이 보이질 않는 칠흑같은 새벽 속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봉우리를 올라가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지만 앞이 얼만큼 남았는지 모르기에 힘이 배가 들었던 것 같다. 

 묵묵히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르자 대청봉이 나왔고 대청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쉬운 길이었다. 이 때부터는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겨서 손전등으로 이곳 저곳을 비춰가면서 산 자락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불빛도 감상하고, 허리까지 쌓인 눈들과 그 눈들을 뚫고 솟아오른 듯한 지리산을 대표하는 자작나무도 감상하며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 살짝 아래에는 당시 헬기장으로 추정한 제를 지내기 위한 평평한 제단이 있었고, 그 위로 천왕봉 비석이 우리를 맞이했다. 

 천왕봉 비석에는 지리산 정상임을 나타내는 높이가 있고, 그 뒤에는 한국인의 기상 이 곳에서 발원되다 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무언가 그 문구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가지기는 커녕, 너무 매서운 칼바람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일출 시간보다 이른 까닭에 바람을 등진 채로 일출을 기다렸는데, 그 동안 생일을 맞이한 나에게 친구들이 몽쉘 통통 1개에 큰 양초를 꽂고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각주:2] 

< 모자를 쓸 것을 그랬다. 초점도 하나도 안맞는다. >

 비록 날씨가 궂은 까닭에 일출은 보지 못하고 지리산을 내려왔지만, 서울 올라와서도 근육 진통제를 먹을 만큼 허벅지와 종아리가 아팠지만, 지리산 겨울 산행은 나에게 큰 추억과 기억과 소중한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누군가 대한민국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할 것 1가지 중의 하나가 지리산 종주라고 하였던가. 한라산 등반 때도 그러했지만, 지리산 역시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산이다. 다음에 간다면 반드시 귀마개를 챙겨서 갈 것이다. 

 다음 지리산에 관한 글은 노고단부터 시작해서 천왕봉까지의 종주를 꿈꾸며 지난 4일에 있었던 지리산 산행기를 마친다.
 



 
  1. 원래는 양념 소불고기를 준비 했으나, 냉장고에 넣고 미처 챙기질 못하여 중산리 마을에서 급조한 메뉴로 생 삼겹살에 김치와 고추장 넣고 대충 볶은 것이다. [본문으로]
  2. 사실 생일은 산장에 있던, 4일이었는데 정상에서 해준다고 바득 우긴 까닭에 다음날 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고마운 친구들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zero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