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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1 2012년 3월 1일, 광교산에 오르다
2012. 3. 1. 21:47

 오늘로부터 93년 전, 만세 운동을 불렀던 날, 3월 1일을 맞이하여 집안 대청소를 하였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3월 1일은 그저 쉬는 날 혹은 TV에서 만세 운동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 그 시대를 그리는 드라마를 틀어주는 그런 날로 기억을 하지, 기념일 답게 지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단히 의미 깊고 중요한 날이고 충분히 기념할 날이지만, 아무튼 지금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나에게도 그 의미가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예전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 때는 그저 태극기를 꺼내서 계양하는 것으로 3월 1일을 대신하였는데, 직장에 다니는 지금은, 그리고 계양할 곳도 없는 곳에서 사는 현재로서는 3월 1일이 주는 휴식이 고맙기만 하다.

 평일 가운데 끼어 있는 휴식일을  기뻐한다는 듯, 2월 29일날 벌어진 쿠웨이트 전, 월드컵 3차 예선도 승리로 장식하고 기분 좋게 치킨과 맥주, 소위 말하는 치맥을 즐기며 다운 받은 영화[각주:1]를 새벽 늦도록 보며, 한 껏 게으름을 피운 결과 정오가 되어서야 겨우 잠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미적이며 잠에서 깨자마자 틀어본 TV에서는 어김없이 3월 1일을 맞이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는데, 독도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조금 관심이  가서 보았는데,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예전에 1900년 초에는 독도에는 바다 사자의 일종인 강치라는 포유류가 서식했는데, 이 강치를 일본놈[각주:2]들이 러일 전쟁을 틈타 무분별하게 사냥했을 뿐만 아니라, 독도를 불법적으로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시키고 이때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말도 안되게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강치들은 일본놈들이 거짓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다큐멘터리 중간에는 사실, 일본놈들이 강치를 사냥하기 전에 -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시발점은 자신들이 최초로 독도에서 강치를 사냥했다는 것에 있다. - 조선인들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강치의 존재를 먼저 알고, 사냥도 했었다는 것을 증거로 일본의 독도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었다.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독도는 분명히 대한 민국의 영토인데, 시마네현청사 앞 전광판에 버젓히 거짓된 영토 주장을 일삼거나 하는 등의 일본의 그릇된 태도는 인도주의적, 글로벌 관점에서 같이 경쟁하고 상생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는 이불을 탁탁 털어 옥상에 내어 걸고, 약간의 정리 정돈을 하고, 방 바닥을 쓸고, 걸레로 닦아 내었다. 이 정도는 평소에도 사실 쉽게 할 수는 있는 일인데, 집에 좁고 수납할 공간이 많이 없다 보니 방이 어질러져 쉽게 맘이 내키질 않아, 요즘은 월례 행사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곧 이제 봄이 오기 때문에, 신경 써서 구석 구석 깨끗이 청소를 하였다.  나는 예전부터 감기에 쉽게 걸리진 않는데, 꼭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한 두번 걸리면 2~3일 정도 크게 고생을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계절이 바뀌고 황사와 꽃가루가 불어오는 시점에는 꼭 깨끗이 청소를 해야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청소를 마치고 간단히 찬 물로 머리를 감았다. 청소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겨울철 차 시동을 미리 걸어 두어 찬 기운을 없애고 따뜻한 히터를 틀어 놓아 따뜻하듯이, 몸이 적당히  데워지고 날씨까지 완연한 봄처럼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어서, 찬물로 세수를 해도, 머리를 감아도 괜찮겠다 싶었었는데, 그것은 정말 큰 오산이었다. 1박 2일에 이승기가 맨 처음 등장했을 무렵, 겨울철에 찬 물로 세수하면서 무척이나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쥐는 장면과 같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약 3번의 머리 감싸쥠 끝에 겨우 머리를 헹굴 수 있었고, 따뜻한 드라이기 바람에 잠시나마 행복감까지 느꼈다.

 청소와 세신까지 마친 후에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옷을 입고 광교산을 향했다.

 얼마전 포스트에 지리산 산행기를 올린 적이 있었는데, 산은 점점 다닐 수록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만 같다. 처음 제대로 스스로 등산을 하기로 마음 먹은 후 올랐던 산이 광교산이었는데, 산이란 것은 참 재미있게도, 한 번 갔을 때, 두 번 갔을 때, 그리고 여러 번 갔을 때 모두 같은 느낌이면서, 미묘하게 다른 기운과 느낌을 안겨준다.

 내가 광교산을 오르는 코스는 주로 상광교 종점 버스 정류장 근처 갓길에 적당히 차를 세운 후 시작하는데, 예전에는 군 부대 통신탑 쪽으로 포장 도로를 올랐으나, 이 코스는 시간이 촉박하고 간단히 산 기운만 느끼고 싶을 때 이용하며, 현재는 토끼재 쪽으로 오르는 코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토끼재를 올라, 좌측으로는 시루봉을 갈 수 있고, 우측으로는 비루봉과 조금 더 가면 형제봉을 갈 수 있다.

 오늘도 토끼재 코스를 올랐다. 요즘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 없이 한 걸음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아직은 붙어 있는 살들이 많은지 숨이 차고 땀도 무척이나 많이 나서, 토끼재 정상까지 한 번 쉬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운동을 꾸준히 한 까닭에 육체적으로는 근력이 받쳐주어 숨만 조금 고르고, 땀을 닦아내고 다시 곧바로 오를 수 있었다. 토끼재를 올라 벤치에서 잠시 땀을 자연스레 불어오는 바람에 씻겨내고는 비루봉과 형제봉 쪽으로 향했다.

 비루봉은 토끼재에서 약 60미터만 가면 갈 수 있는 봉우리인데, 정자가 놓여 있어서 산행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형제봉은 비루봉을 지나서 약 1.2km 정도를 가야 나오므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였다. 사실 형제봉을 가는 것이 오늘이 처음인지라, 끝없이 계속해서 내려가는 등산 코스에 산 아래까지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었었다. 봉우리와 그 다음 봉우리를 가게 되면 보통은 약간 내려온 후 능선을 따라 이동하여 다시 약간 올라가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계속해서 나오는 내리막길에 이 곳은 내가 알던 그런 능선 생김새가 아니구나 싶어 여차하면 그냥 하산하려고도 했다.

 걱정은 기우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봉이 400m 남았다는 표지판을 만났다. 산 길로 400m 라면 표현이 웃기지만, 정직한 표지판인 경우에는 오르막길 기준으로 약 30분정도에서 평균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기에, 힘을 내어 형제봉을 올라가기로 했다. 사실 하산하려고 해도 하산할 샛길이 없었다. 표지판을 지나자마자 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는데, 한 번 힘들게 토끼재를 올라오고 나니, 오르막길도 쉬엄쉬엄 걸어가자 크게 힘이 들지 않았다. 등산을 하면서 알게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데, 처음 산을 오를 땐 무척이나 힘이 들고 숨도 차고 하지만, 중간 능선이나 작은 봉우리 정도를 지나고 나면, 희안하게도 처음과 같은 오르막길을 만나더라도, 느끼게 되는 힘듦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마 항생제에 대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들이 내성을 갖듯, 아니면 사람들이 한번 맞닥뜨린 자극에는 쉽게 반응을 못 느끼고 더 큰, 더 강한 자극을 찾듯이, 등산에도 비슷한 원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다른 일에도 이런 원리들이 있지는 않을까? 어떤 분야라도, 전혀 새로운 일이나 공부를 처음 하게 될 때에는 많은 힘이 들지만, 어느 정도 하고난 이후에는 처음에 얻었던 결과를 얻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나 고된 정도가 처음보다 훨씬 적게 되는 것이, 등산도 마찬가지 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나자, 더욱더 힘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내 형제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형제봉 비석 아래 편에는 매우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곳을 가자 나무에 가려져 있던 경치가 드러나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실어 가며, 머리 카락을 살살 간지럽히니, 숨이 찼던 것도, 힘이 들었던 것도 모두 다 잊을 만큼 좋은 느낌에 가만히 풍경을 두 눈 가득 담아 보았다.


< 형제봉 비석, 448M 밖에 안된다. >





< 형제봉 아래 편에서 바라본 광경, 아마 용인 어디 쯤일 것이다 >


 사진으로는 내가 느낀 느낌이나 기분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마 조금 좋은 카메라가 있었으면 그래도 사진을 보면서 이때 느꼈던 것의 몇 프로라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듯, 직접 보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동영상까지 담아 보았다.




 세로로 찍은 탓에, 넓게 보여지지 못해 아쉽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언제 다시 이 동영상을 본다면 그 날의 기분을 다시 느껴봤으면 좋으련만, 동영상이 너무 안좋게 나왔다. 하지만 바람 소리만큼은 리얼하다! 저 바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시원했었는지 소리만 들어도 느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긴 휴식과 혼자만의 생각을 뒤로 접은 채 하산을 하기 위해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려 걸었다. 등산을 하면서 주변 산행객들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음악을 틀어 놓고 이어폰을 꽂은 채 산을 올랐었는데, 시간이 얼추 지나자 주변에 산행객들이 없어 이어폰을 뺀 채 자연이 주는 소리들을 만끽하며 하산을 하였다. 자연이란 것을 온전히 느끼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10대에는 자극적이며, 신기한 것들을 쫒느라 자연을 느끼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고, 20대에는 스스로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여 다른 틈이 없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규칙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주말이 되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자, 비로소 그 동안 받았던 자극들이나 신기한 세상 경험들, 그리고 힘들게 거쳐온 나의 20대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자연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어렸을 때 보아왔던 어른들이 하던 것들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산을 좋아하고,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흐느끼는 들판을 바라보며 가슴이 푸근해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고, 구수한 가락이라던 트로트가 왜 구수한 지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다시 비루봉에 도착하자,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왜 태양은 떠오를 때와 저물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인가?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처음은 멋지고 의욕차고 힘차게는 누구나 잘 하는 것 같지만, 일을 마무리 할때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까지 온 신경을 다해서 해내고야 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자연처럼, 태양처럼 끝을 낼 때에도 아름답게, 온전히 끝맺음을 내야 할 것인데, 오늘도 자연에게 하나 배워간다. 이것이 등산이며, 자연을 함께 하는 삶 아닐까.

< 광교산 비루봉에서 맞이한 일몰, 저 통신 탑은 무엇을 교신하는가? > 


<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얻어왔다. >



 등산이란 것은 단순히 신체 건강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게 살찌우는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다시 내려올 것을 뭐하러 올라가는 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왜 등산이 좋으냐고 물으면 난 이렇게 대답을 할 것 같다. 아마 그냥 재밌으니까. 힘들게 오르는 그 과정 자체도 즐겁고, 능선에 올라 가벼운 산책로를 걷는 것도 즐겁고, 내리막길을 다리에 힘주어 천천히 걷는 것도 즐거우며, 그 모든 과정에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과 사시사철 다른 경치들, 그리고 흙과 그 내음. 이 모두가 즐겁고 재밌으니까. 등산이 좋다.



  1. Last Night이라고 직장 동료와의 로맨스(정확히는 불륜)를 그린 영화를 보았다. [본문으로]
  2. 일본인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놈이라 칭한 것은 오늘이 3월 1일이란 것을 상기한다면, 응당 당연한 일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zerolive